“아니, 대체 어떻게 내 방에 들어오게 됐냐? 제대로 대답 안 해? 우연아. 어젯밤 기정이 만났지?” 그린이가 침대에 앉아서 우연이를 바라보았다. 잠을 아직 자는 척하며 대답하지 않은 우연이는 설명하지 못한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알았어. 대답하지마. 남똥이한테 물어봐야지…” 그린이는 핸드폰으로 찾아보다가 갑자기 우연이가 일어났다.
“미안해, 언니, 너무 취해서…”
한 시간 뒤, 그린이의 옷을 빌려 입고 집을 나온 우연이가 급히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갔다. 그날 밤에 드디어 드라마 첫 회를 방송할 예정이라서 같이 첫 회 방송 기념 파티를 할 예정이었다. 레이팅이 어떻게 나올까? 갑자기 레이팅에 대한 생각이 없어지고 기정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모든 스탭들이 모여 있었다. 우연이가 도착했을 때 감독과 배우들도 한 편에 벌써 같이 앉아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기정이의 옆 자리에 앉게 된 우연이는 얼굴이 쉽게 빨개지는 편이라 그 자리가 많이 불편했다.
‘나 빨개지지 않았겠지? 그지? 다들 알아채면 안 되는데…’
우연이가 바로 옆에 앉았을 때 기정이는 살짝 미소를 지었고 앞에 앉아 있는 태신이를 쳐다보았다. 표정으로도 기정이가 태신이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그래, 이거 봐. 우연이는 내 옆자리로 왔어. 내가 맞았지?’
태신이의 표정은 곧 어두워졌는데 예림의 표정이 완전히 화내는 표정이었다. ‘아직도?,’ 우연이가 생각했다. ‘아직도 날 그렇게 미워하나?’
“음, 여러분 많이 드세요! 오늘 밤 무슨 시청률이 나와도, 우리 지금은 맛있게 먹읍시다!”
긴장된 듯한 분위기를 눈치채고 감독이말했다. 모두가 저녁을 먹기 시작했는데 결국 음식만 좋은 것이 아니라 시청률도 잘 나와서 행복한 파티로 끝나게 되었다. 다만, 두 명만 빼고. . .
안예림, 변태신.
둘이 맨 뒤에 서 있어서 스탭들이 가서 같이 축하하려고 했었는데 싸늘하고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는 이 두 배우는 계속 표정을 굳게 하고 무표정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잠시 화장실에 갔다 온 우연이가 문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 태신이를 부딪혔다.
“너네들 헤어졌는데 왜 그래?” 태신이는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물어봤다. 우연이가 그냥 넘어가려고 했지만 또 태신이는 길을 막았다. “대답해.”
“신경 꺼.”
우연이는 무심히 한마디를 툭 던지고는 갑자기 예전 기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 헤어진 이유에 대한 기억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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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시원한 밤에, 한강 공원에서 둘이 헤어졌다. 오래 참아 왔던 좌절감.
“우연아, 그러지 마, 응? 이해가 안 돼.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 지 알려줘.” 그 때 갑자기 나타난 팬들을 우연히 만나서 사인을 해 준 기정이가 우연이를 따라가서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너무 잘 생긴 네 옆에 내가 서 있는
것까지 싫어하는데 왜 이해 안 된대?” 기정이를 쳐다보며 우연이가 화를 냈다. “갈 때마다 여자들이 널 보고 막 사귀자, 혹시 연예인 아닌가, 모델 맞으시죠?…그런 말 딱 한 번만 더 들리면 내가 그 사람을 죽일 수도 있어!”
“우연아…내가 모델인 거 넌 알고 있었잖아. 그래서 사람들이 날 보고 알아봐 주면 좋은 건데 왜 날 위해 함께 행복해 줄 수 없는 거니?”
“기정아.”
“응? 왜?”
“예림이 했던 나쁜 짓들…너랑 사귄다고 나한테 거짓말 하며. . . 날 아프게 했던 거…그리고 엄마가 널 싫어하신 거. 그거 다 과거라고 생각했는데… 또 그렇게 생각해 보려고 했는데…이렇게 너랑 결혼하고 싶다고 하는 많은 팬들…난 그거 못 참겠어. 못 참겠단 말이야. 한 번, 두 번도 아니고. 우리 데이트할 때마다 여자들이 널 보고 소리 지르고 그러는데. 여자친구로서 어떻게 참겠니? 네가 제대로 연예인이 되면 더 심해질 거야. 나는…나는 그전에 헤어져야 할 것 같아.”
기정이가 묵묵히 서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잠시 바라보다가 어두운 표정을 보고 얼른 지나갔다.
“나랑 헤어진다고?”
“그래. 우리 헤어지자, 기정…아.”
갑자기 우연이를 꽉 안았다가 기정이가 뒤로 물러났다. 움직이지 않고 말했다.
“그래. 가라. 조심히 들어가. 이젠 못 보겠네.” 차가운 말투로 말을 내뱉고 기정이가 조각상처럼 서 있었다. 마지막 인사도 없이 우연이가 한강 공원에서 뛰어갔다. 지하철에서 우는 모습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지 않은 우연이는 상관 없이 울었다.
그 날 밤부터는 우연이는 매일 밤마다 마음 속으로 울다가 잠이 들었다.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이었지만 아직 어제 일어난 일처럼 아직도 그 아픔이 느껴졌다.
_____
“난 그때 강한 사람이 아니어서 헤어졌어.”
우연이가 태신이를 담담하게 쳐다보며 대답했다.
“난 지금까지도 기정이를 좋아하지만 서로 각자의 삶을 살아오면서 이젠 제법 강한 사람이 된 것 같아. 좀 비켜 줄래?”
태신이의 목이 뻣뻣해져 말을 할 수 없었다. 우연이 몰래 뒤에 서 있었던 기정이가 처음부터 다 들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며 우연이는 감독을 찾으러 갔다.
“포기해, 인마.” 기정이가 다가갔다.
“난 그동안 기다리고 있었는데 너는 뭐했어? 우연이랑 무슨 깊은 과거라도 있어? 없잖아, 너. 없어 보이지 말고 그냥 포기해라.” 기정의 표정이 잠시 어두워졌다. “포기 안 한다면? 난 가만히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그냥 있으란 말이야?”
태신이는 기침을 하고 말했다.
“웃기지마. 네가 뭘–?”
“나. 랑. 다. 시. 사. 귈. 거. 다.”
기정이가 아주 정확히 말했다.
“나랑!”
태신이는 대답하지 않고 가 버렸다. 기정이는 잠시 서서 생각하다가 아까 우연이가
간 쪽으로 갔다.
박영하가 죽었다고 소식이 바닷가 마을에 퍼졌다. 하지만 선도희는 이 소식을 못 들었다그 다음 날에 경찰들이 선도희 집으로 왔다. 경찰들이 선도희한테 이 나쁜 소식을 말 해줬지만 선도희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의붓아버지가 죽었지만 옛날 부터 선도희는 자기 의붓아버지를 사람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고, 의붓아버지는 선도희에게는 이미 죽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찰들이 선도희한테 이제 이 마을에서 못 산다고 했다. 가족도 없고 마을 사람들이 선도희를 원하지 않아서 경찰들이 선도희한테 서울로 보내겠다고 말했다. 사실 선도희는 서울로 가기 싫었다. 이 마을에서 자랐기 때문에 계속 이 마을에서 살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경찰한테 여기 있고 싶다고 해도 경찰들이 선도희한테 서울로 보낸다고만 반복해서 말했다. 그래서 선도희가 자기 짐을 다 챙기고 경찰서로 갔다. 경찰서에 도착해서 빌딩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선도희가 깜짝 놀랬다.
로비 바닥에의붓아버지가 죽어 있었다. 의붓아버지의 얼굴을 알아챌 수 없었지만 의붓아버지의 손을 알아봤다. 이 상황에서도 선도희는 슬픔을 느끼지 안 았다. 왜냐하면 선도희에게는 그 바닥에인간이 죽어 있는 것이 아니라 동물이 죽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경찰들이 선도희한테 다른 데서 기다리라고 했지만 선도희는 싫다고 했다.
2 시간이 지나서 선도희가 차를 탔다. 선도희는 서울에 한 번도 가본적이 없었지만 궁금하지 않았다. 가는 길에선도희는 이영남에 대한 기억이 갑자기 생각났다. 경찰들한테 이영남 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지만 경찰들은 도대체 이영남 누구냐고 했다. 선도희가 이영남하고 같이 살았다고 말했지만, 경찰들이 이영남은 마을에서 살지 않았다고 했다. 선도희 입장으로는 이 경찰들이 이영남이랑 못 살도록하기 위해서 모른척한다고 생각했다.
선도희가 고아원에 도착했을 때 도망치지 않고 그냥 경찰하고 같이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 빌딩 안에서 선도희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고아원 원장이 선도희의 눈에서 슬픔을 느꼈다. 선도희한테 다라 오라고 했다. 다른 고아원 원생들은 선도희를 보고 아무 말도 안 했다. 원장이 선도희를 방으로 데려다 준 다음에 선도희를 홀로 두고 방을 나갔다.
방에서 선도희는 침대에 앉아 한숨을 쉬었다. 도대체 언제 자기 삶이 끝날까라고 생각을 했다. 의붓아버지가 죽었지만 질투심을 느꼈다. 만약 자기가 죽었으면 더 좋았을 수도 있었단 생각이 선도희한테 위로를 가져왔다. 갑자기 선도희는 일어나서 창문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창문 열고 나서 자연스러운 바람이 방 안으로 살며시 들어왔다. 선도희는 눈을 감고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지현은 안정된 직업이 없었고 대영은 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전남편의 돈을 모두 사용하는 데 1년도 걸리지 않았다. 지현은 다시 웨이트리스로 식당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결코 다시는 볼 수 없을 것같던 사람을 만났다.
“지현?”
그녀의 실제 이름을 듣고 청소하는 것을 멈추게 됐다. 그녀는 식탁을 닦으면서 올려다봤다. 그녀는 이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다.
“나야. 모유란. 우리는 같은 고등학교에 갔는데. ”
“그…”
“너는 수업에 자주 오지 않았고 몇 달 동안만 와서 나를 몰라 볼 수 있는데, 나는 너의 얼굴을 기억한다.”
“오 …” 지현은 아직 충격을 받아서 대답을 제대로 못 했다.
“어떻게 지냈니? 괜찮아?”
“나… 나는 …” 그녀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나는… 내 이름을 서희로 바꿨어.”
“정말? 괜찮아. 너–”
“엄마!” 어떤 소년이 유란을 불렀다. 한 남자와 소년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어, 잠깐만!” 유란은 되돌아봤다. “내 남편과 아들.”
“나도 아들 있는데…” 지현은 조용히 말했다.
“진짜? 몇 살? 우리 준재랑 친구가 될 수 있겠네! 남편은 누군데? ”
“치현은 10살이고… 그리고 남편은 … ” 거짓 눈물이 그녀의 뺨에 흘렀다. 그녀는 가슴을 움켜 쥐고 바닥에 떨어졌다.
“남편은 작년에 죽었고 지금 너무 힘들게 살고 있어.”
지현은 거짓말을 했다.
“나는 우리 아들 치현이를 행복하게 할 수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어.” 그녀는 유란의 팔에 안겼다. “치현이를 입양 센터로 보내야 해?”
“서희야, 괜찮아. 잠시 우리 집에 있는 게 어떨까? 우리는 빈 방도 있는데, 우리 애들이 서로 친구가 될 수도 있고. 그리고 더 나은 직업을 찾도록 내가 도와 줄 수도 있잖아!”
“아니, 아니, 나는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 지현은 그녀를 밀어냈다.
“아니, 괜찮아. 요즘은 남편의 회사가 잘 되고 있어. 잠시 너와 네 아들을 돌볼 수 있을 거야. 제발 내가 도와줄 수 있게 해줘. 응?”
유란은 그녀의 도움의 손길이 몰락을 얼마나 부추기게 되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몇 달 후 그녀의 남편도 순진하게 유란보다 지현이가 그를 더 많이 사랑한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유란과 일중은 몇 달 안에 이혼했다. 지현은 새로운 가정을 위해 유란을 쫓아 버렸다. 지현은 유란한테 다시 연락하지 말라고 했다. 유란의 아들 준재는 유란이 혼자 그를 양육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와 함께 머물렀다. 준재는 결국 도망갔다; 5년간 그들과 함께 지낸후에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몇 년 동안, 그는 자기 엄마 유란을 찾아다닐 것이다. 지현과 일중은 내년에 결혼할 예정이고 대영은 은행과 사람들의 돈을 털어 버리는 조직의 일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