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릿 핑거스 팬픽션
에피소드 2: 내게로 돌아오는 너
합정과 홍대 사이에 있는 분위기가 아주 좋은 레드빅이란 카페에서 그린이 언니를 만나기로 했다. 시험 본 다음 날 우연이는 레드빅으로 걸어 갔다. 남의 대화를 살짝 엿들으면서 그림을 그리려고 갔던 우연이의 단골 카페였다. 먼저 도착한 우연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잔과 딸기 타르트 한 조각을 시킨 다음에 자리를 잡고 그린이를 기다렸다.
“축하해.”
어제 온 문자가 자꾸 떠올라서 잠을 설친 우연이는 기다리며 졸았다. 도대체 누굴까? 스토커였다면 당연히 무서웠겠지만 가족이었다해도 무서웠다. 그림 그리기에 대한 관심을 원래부터 반대하신 엄마까지도 우연이가 유명해진 웹툰을 그리는지 모르셨다. 옛날과 똑같이 우연이는 자신을 말 안 듣는 자식으로 여기시는 엄마 앞에서 조용히 대학을 다니는 척 해야만 했다.
“베블아!”
카페에 들어온 그린이가 활짝 웃으며 우연이에게 뛰어왔다. 몇 주 동안 일 때문에 너무나 바빠서 못 본 그린이와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다가 우연이는 이상한 문자에 대해 설명을 했다.
“아니, 우리 베블한테 누가 감히…!” 그린이는 화가 나서 일어서다가 우연이의 걱정어린 눈으로 흝어보는 모습을 보니 가라앉았다. 차분해진 목소리로 계속했다. “누군지 추측이라도 해볼 수 있니?”
양손으로 잡은 커피 잔으로 눈을 내리깔은 우연이가 낮게 속삭였다.
“사실은…처음에 언니의 남동생인 줄…”
그린이가 그 말에 한숨을 쉬었다.
“그런 느낌이겠지. 근데 베블아, 우리 동생은 하나도 몰라. 베블의 번호, 베블의….작품. 그리고 걔는 아직 아쉬운 마음으로…베블이랑 헤어지던 기억 때문에 연락해 볼 생각 없을 것 같아.” 조심스럽게 옛날에 대한 말을 꺼내려고 한 그린이는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르는 듯 갑자기 침묵했다.
“괜찮아요. 저 다 이해해요, 언니. 우리…잘 어울리는 커플인 줄 알았는데 보니까 우리 안 맞았죠. 기정–아니, 언니 동생의 잘못이 아니었어요.”
둘은 유명해진 남기정의 이름을 말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미안해 베블아.” 울먹거리는 그린이 우연이의 손을 움켜잡았다.
“어쩔 수 없었지… 우리 엄마도 연애 반대하시고…걔랑 사이도 불편하게 됐고…뭐, 아무튼…다른 얘기할까요? 언니는 요즘 선호 오빠랑 사이가 어때요?”
묵묵히 앉아 있는 그린이가 갑자기 빨개졌다. 그린이는 스피릿 핑거스 활동을 같이 했던 블루 핑거 선호와 일년 동안 사귀다가 헤어졌던 사이였는데 올해 같은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되어서 둘이 친구로서 다시 몇 번 만나서 술을 한 잔 한 것이었다. 우연이의 첫사랑, 스피릿 핑거스 모임에 초대해 주었었던 구선호. 선호 오빠에게 고백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이 아주 가끔은 떠올랐다. 그 오빠는 정말 잘 생겼던데…
그린이 머뭇거리며 자리에 걸터앉았다.
“비밀이야, 알았지? 선호가 날 다시 좋아하나 보다. 그리고 나는…솔직히 내 마음도 바뀐 것 같아.”
“언니! 진짜로? 대박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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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만들 감독의 회사 앞까지 온 우연이가 회사 앞에서 웅성대고 있는 무리를 바라보고 목덜미에 소름이 우두둑 돋았다. 거의 모두가 우연이의 웹툰에서 나온 내용에 대해 신나게 말을 하고 있었다. 드라마로 만들어질 웹툰의 팬들이 많이 모여 있었지만 아무도 모르게 그 웹툰의 작가는 뒤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회사에 들어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송우연 씨! 맞으시죠?”
들어가자마자 회사의 스탭이 나타났고 감독의 사무실까지 우연이를 데려다주었다.
“아하! 지금 이 순간 – 마법인가요? 제가 노래를 부를 줄 알았죠? 흐흐! 마법을 아는 듯 이야기를 잘 만드는 송우연 씨가 드디어 오셨네요! 반가워, 반가워!”
특이한 감독의 목소리가 건물만큼 크게 들렸다. 이 전에 우연이는 회사의 관리자와만 은밀히 만나서 드라마의 대본을 쓸 계약을 했기 때문에 이 유명한 감독과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감독의 이름은 한경희였는데 아주 착해 보이는 오십줄이 된 남자였다. 감독은 우연이에게 따뜻하게 인사를 하고 나서 앉았다.
“자, 어디 보자. 오늘 만나는 이유가 혹시 뭔지 아시나요?” 한 감독이 물어보았다.
“아…그게…음…”
긴장이 되어서 떨리며 대답하려고 하는 우연이는 더듬더듬 말하다가 옛날 스피릿 핑거스 멤버들에게서 배운 조언이 떠올랐다. 용기가 필요할 때 마음속으로 세 번까지 되뇌어야하는 말들.
나는 멋져. 나는 멋져. 나는 멋져.
그러자 힘이 난 우연이는 웃으며 머리를 저었다.
“아녜요! 왜 만나는 거죠? 제가 에피소드 2회까지 쓰고 내 드렸는데 혹시 대본에는 문제가 있나요?”
“아니지!”
감독이 활짝 웃으며 우연이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오늘은 오디션의 파이널 라운드를 하는 날인데 작가가 보고 싶어할 것 같아서 초대해 드렸죠. 대부분의 오디션을 안 봐도 되는데 주인공을 위한 오디션은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한 시간 뒤 남자 주인공 오디션이 있는데 송우연 씨, 저랑 점심 드시고 보시겠어요? 당연히 오디션을 할 사람들 다 비밀 유지 계약에 서명해야 했었죠. 송우연 씨가 익명으로 활동하시는 마음을 잘 지켜 드리려고요.”
우연이는 아주 기쁜 표정을 지으며 대답을 했다.
“네! 감독님께서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디션 보고 싶네요!”
“좋네요! 그리고 오늘은…” 감독이 비밀을 알려줄 듯 다가오면서 속삭였다. “오늘은 여자가 아주 좋아하는, 인기가 기막히게 많은 배우가 오디션을 하러 왔더라구요…”
감독의 핸드폰 알람 소리가 들렸다. “잠시만요. 송우연 씨 먼저 오디션 방으로 가실래요? 거기서 지금 오디션 준비를 재미있게 보실 수 있거든요. 관리자가 모셔다 드릴 거예요.”
감독의 사무실에서 나온 우연이는 오디션 방까지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관리자가 점심을 가져 오느라 늦는 동안 우연이는 조심스럽게 이리저리 잠시 회사를 구경하다가 관리자가 다시 오는 줄 알았기 때문에 오디션이 있는 방의 문 앞에 다시 앉았다.
하지만 관리자가 아니라 그 익숙해지던 얼굴을 보았다. 옛날 그 익숙해지던 모습, 이제 광고에서만 볼 수 있는 그 모습.
이번에는 광고가 아니라, 꿈에서 나타난 귀신이 아니라 진짜 사람이었다.
한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배우 남기정이 바로 그 순간에 오디션 방으로 오고 있었다. 송우연이 앉아 있는 자리로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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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카페 레드빅은 실제로 있는 카페인데 한번 가 보세요! 제가 한국에 있었을 때마다 단골 카페였거든요~
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코멘트 늘 부탁드려요^^
에피소드 2의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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