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릿 핑거스 팬픽션
에피소드 3: 연기하지 않는 배우
“사랑했어, 널 사랑했다구.”
오디션 방 뒤 쪽에 서 있는 우연이는 심장이 마비된 듯 꼼짝할 수 없었다. 기정이의 심각한 표정을 바라보며 두근거리는 그의 목소리만 들려왔다. 바로 그 순간에 기정이는 계속 고백을 하고 있었다.
“미친 듯 사랑했어, 항상, 처음부터. 네가 좋았어. 내 맘을 쓰레기 같이 버린 너. 근데 웃긴 거 하나 알려줄까? 쓰레기 같은 내 마음 땜에 아직도 네가 좋아. 말도 안 되지? 나도 이해 안 가. 널 사랑해.”
오디션이 끝났고 모두가 박수를 쳤다. 오디션을 보고 있는 많은 드라마 스탭들은 신나게 대화를 시작했고 가슴이 설렌 우연이가 잠시 동안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때 우연이의 인생에는 우연히 일어났던 일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디션은 웹툰에서 나온 장면으로 할 거예요?” 아까 점심을 먹으면서 우연이는 감독에게 물어봤었다. 오디션 방으로 기정이가 다가오고 있던 것을 봤을 때 얼른 숨었던 우연이는기정이가 다른 일 때문에 회사에 왔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디션이 시작되었을 때 우연이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우연이가 쓴 웹툰으로 만들어질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 오디션을 하러 온 것이었다.
성격이 좋은 감독은 기쁜 미소를 지으며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우연이는 착한 감독이 참 마음에 들었다는 생각했다.
“당연히 웹툰에서 나온 대본으로 처음부터 오디션을 하기로 했죠. 작가님이 아주 좋아하실 걸요! 전 남자친구가 갑자기 다시 나타나서 아직도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는 장면인데 스탭들 모두가 동의한 거에요. 남자 주인공 오디션이면 꼭 그 장면이라고요. 특별히 심쿵하게 하는 장면을 정해야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남자의 진심을 느낄 수 있는 장면. 이번에는 마지막 라운드라 남배우 두 명만 오디션을 할 예정이거든요.”
남자 주인공 오디션이 있을 방에 들어온 우연이는 남배우 한 명을 본 다음에 기정이
가 들어온 것을 알게 되었다. 숨고 싶은 마음에 뒤쪽으로 뛰어왔기 때문에 아직 기정에게 발견되지 않았지만 기정이가 대본을 연기했을 때 우연이는 기정이와 서로 눈이 마주친 줄 알았다.
어떻게 할까? 어떡해?
두근 두근. 우연이와 기정이 사이에 드라마 스탭들이 숨 막히게 많아서 잘 안 보이는 상황이었다. 불편한 우연이는 기정이와 눈 맞춘 것을 상상한 건지 실제로 한 건지 갑자기 확실하지 않았다. 눈이 마주친 것이 없었겠지? 맨 앞에 서 있는 감독이 기정이의 매니저인 듯 보이는 키가 크고 아주 똑똑하게 보이는 남자와 진지하게 얘기하고 있었다. 기정이가 남자 주인공으로 정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우연이는 도망치고 싶었다.
토할까 봐서 화장실을 찾으러 우연이가 뒷문으로 조용히 나갔다. 조금 걸어 가 보니 복도와 맞붙은 휴게실이 보여서 우연히 찾아 들어간 우연이는 손을 떨며 자동판매기에서 사이다 한 병을 샀다.
뒤에서 남자다운 목소리가 갑작스럽게 갑자기 들려왔다.
“너도 기억나? 우리 처음 만났을 때 자동판매기 앞에서 우연히 만났잖아.”
한 모금 아니라 원샷을 하듯 꿀꺽꿀꺽 들이키고 있는 우연이는 사이다를 확 내뱉었다. 뚜벅뚜벅. 휴게실에 기정이가 걸어 들어왔다. 옛날보다 더 멋지고 잘 생긴 것 같은 그 모습이 나타나서 우연이의 마음을 흔들었다. 기정이는 조금 변했었지. 더 남자답게, 살짝 더 뻔뻔하게.
결국에는 휴게실에 서 있는 그가 우연이의 인생 속으로 들어와 버렸다. 말도 없이 서로 바라보았다.
잘 지내냐고, 내 생각했냐고, 연애 다시 해봤냐고. 물어보고 싶은 말들 모두가 우연이의 턱 끝까지 올라왔지만 차마 내뱉지 못했다.
“너 혹시 그 드라마 안 하면 안 돼?” 우연이는 불쑥 물어보았다. 그 말을 듣고 바로 화가 난 표정을 지은 기정이는 한 발 한 발 일부러 천천히 다가왔다.
“오랫동안 못 본 사이인데 ‘잘 지냈니’라도 물어보면 안 되나? 응? 넌 너무해, 우연아. 난 그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서 일부러 왔잖아.”
숨이 막힌 우연이가 한 걸음 물러서서 또 물어보았다.
“뭐라고?”
“내가 오면 널 다시 볼 줄 알았어.”
이제는 기정이가 아주 가깝게 다가와 있어서 우연이는 벽에 등을 대고 눈을 내리깔았다.
“어떻게? 어떻게 알았지?”
“바로 알았지. 그 웹툰을 매주 봤는데 느낌이 왔지. 작가는 당연히 우연이 너라고. 사랑하던 내 전 여친의 스타일인데 어떻게 모를 수 있겠어, 어? 그런 거 말이 돼?”
“근데 너-” 온몸이 떨리는 우연이가 망설였다. 상상 이외의 이 상황이 믿지 않았다. 꿈이었나? 어떤 꿈인가?
문득 말을 멈춘 우연이를 바라보는 기정이가 잠시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근데 뭐?”
우연이는 생각할 수 없어서 더 망설였다. 좋은 꿈인가, 악몽인가? 아직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아까 오디션에서 본 그의 심각한 표정으로 아직 사랑한다는 고백이 떠올랐다. 우연이는 우물쭈물 말했다.
“너 -넌 연기….잘하네.”
기정이가 한 손으로 벽에 잠시 기대서
우연이를 내려다보고 신비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연기 아니었잖아.”
기정이는 몸을 휙 돌리고 휴게실에서 나갔다. 혼자 남긴 우연이는 충격에 빠진 듯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의 말이 아직도 들리는 것 같았다.
연기 아니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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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오호 이제 재미있는 것이 드디어 시작된 걸까요?
이번에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코멘트 부탁드려요~^^
에피소드 3의 OST:
어머어머 진짜 심쿵!!!! 연기가 아니라니ㅋㅋㅋㅋㅋ 이제 둘은 잘 되는 걸까요~? <3 <3 눈 마주친 거였는지 상상한 거 였는지 고민하는 부분이 정말 사실감 있게 다가와서 정말 인상 깊었어요. 또한, 글 중간중간 우연이의 마음속에 드는 생각들을 한 문장 씩 배치한 것도 읽는이로 하여금 그 감정을 잘 이해하고 몰입할 수 있게 도와줬어요! 잘 읽었습니다.
ㅎㅎ 와우우우! 심쿵하셔서 감사합니다! 우연이의 마음속에 드는 생각들을 알아야 동감이 될 것 같네요 ^_^ 또 방문하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와우, 제이미 씨, 그림과 글은 놀라게 너무 훌륭해요!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때 너무 재미있었어요.
나는 사랑 이야기가 있기를 바랍니다!
ㅎㅎ 재미있으시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써 보겠습니다! ^^